날씨가 쌀쌀해지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시원하게 삭은 김장 김치,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 그리고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젓갈들. 이들은 모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곰삭은 음식들입니다. 이 곰삭은 맛 속에는 혹독한 추위를 달래주던 어머니의 정성과 형제자매의 추억이 깃들어 있어 더욱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삭힐수록 깊어지는 곰삭은 맛은 그리운 겨울의 맛입니다. 이제 곰삭은 음식이 가득한 넉넉한 겨울 밥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엄마 같은 언니가 지키는 곰삭은 밥상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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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경북 영덕의 금곡리. 이곳에 사는 김위자 씨(61세)와 천희득 씨(60세) 부부는 겨울이 다가오면 고랭지 배추를 수확해 김장을 담그느라 분주합니다. 고단할 법도 하지만, 아내의 친정 동생들이 함께 모여 웃음꽃을 피웁니다. 친정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친정집을 지키는 맏언니 덕분에 누리는 행복이 담긴 김장 김치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산간 마을이지만 바다와 가까운 이곳에서는 날생선을 넣은 김장 김치를 담그곤 합니다. 과거에는 겨울이면 눈이 쌓여 고립되기 일쑤였고, 형제들에게 김치 속의 생선 한 조각이 유일한 별미로 여겨졌습니다. 약초꾼이었던 아버지는 생선을 여유롭게 사 올 수 없었지만, 형제들의 우애와 곰삭은 맛이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김위자 씨는 여전히 여름에 따서 잘 삭힌 깻잎김치를 간직하고 있으며, 여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그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환갑을 넘긴 지금도 동생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언니의 곰삭은 밥상은 어떤 맛일까요.
2. 맛도 인생도 곰삭아서 구수한 어머니의 밥상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미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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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봉황로 97
해발 1,300미터의 두타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 덕분에 콩 농사가 잘되는 삼척 내미로리. 이곳의 밭작물 80%가 콩 농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찬 서리를 맞고 알이 제대로 차는 콩은 마치 마을 어머니들의 강인함과도 닮아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어머니들은 콩을 수확해 메주를 쑤고 청국장을 담그는 연례행사를 시작합니다. 힘들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들은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 삶은 콩을 발로 밟아 으깬 뒤, 어머니들이 직접 짠 베 보자기에 감싸 형태를 잡습니다. 이 베 보자기는 밤을 새워가며 자식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 어머니들의 강인한 삶을 상징합니다. 삶은 콩으로 만든 청국장 찌개에는 특별히 양미리를 넣고, 조밥과 섞어 식해를 담급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장을 보러 다니곤 했습니다. 자신을 삭히며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들의 정성이 깃든 내미로리의 밥상은 구수하고 넉넉함으로 가득합니다.
3. 잘 삭혀서 제맛인 아내의 밥상 -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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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의 임자도는 새우젓의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55년을 살아온 주인수 씨(80세)와 이행숙 씨(76세) 부부에게 곰삭은 새우젓은 삶의 일부입니다. 예전에는 젓새우를 잡고 염장하는 일이 아낙들의 일이었고, 물때에 맞춰 들어오는 젓새우를 손으로 일일이 선별하고 염장하기 위해 두세 시간 쪽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새우젓 덕분에 잘 살아왔기에, 그 새우젓을 보며 두 사람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임자도의 또 다른 명물인 민어로 끓인 탕은 깊고 진한 국물 맛을 자랑합니다. 이때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1년 이상 삭힌 육젓입니다. 민어탕을 끓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21살에 시집와 고생하던 시어머니입니다.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곰삭은 갈치속젓을 직접 담가 황석어 조림을 만듭니다. 황석어는 남편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특별한 음식이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곰삭은 바다 밥상을 나누는 부부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겨울의 곰삭은 음식들은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더욱 특별합니다. 그리운 추억이 담긴 맛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따뜻한 겨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